율법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으로 등장한 게 아니에요. 옆문으로 슬쩍 들어왔어요— “율법이 가입한 것은” (로마서 5:20, 개역한글) —주인공이 아니라, 꼭 필요한 조명으로요. 하나님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였어요. 그런데 내 형편을 모르는 채 받은 은혜는 싸구려처럼 느껴져요. 빈손인 줄 모르는 사람은 선물을 귀하게 여길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을 들여보내셨어요.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20, 개역한글) . 당신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진짜 문제를 눈에 보이게 하려고요.

불에 장작을 던지는 것과 같아요. 율법은 완전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타락한 본성에 하나님의 기준을 들이대면 숨어 있던 것들이 죄다 타오르기 시작해요. 음욕은 간음으로 드러나고, 미움은 살인으로 드러나죠(마태복음 5:21~28). 율법이 기준을 얼마나 높이 올려놓는지, 내 인생 가장 잘한 날조차 그 아래 주저앉고 말아요.

왜 그럴까요? 애쓰게 하려고요. 그리고 넘어지게 하려고요. 정직한 사람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터뜨리고 마는 그 외침을 깨우려고요.

“애쓰면 애쓸수록 더 나빠져요.”

바로 그때, 은혜가 비로소 말이 돼요.

죄가 치솟은 바로 그 자리, 실패가 겹겹이 쌓인 바로 그 자리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로마서 5:20, 개역한글) . 은혜는 당신의 약한 곳을 조심조심 비켜 가지 않아요. 죄가 왕 노릇 하던 그 자리를 그대로 덮어 버려요.

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바울이 들었던 바로 그 비난을 똑같이 듣게 돼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로마서 6:1, 개역한글) .


아무도 당신에게 그렇게 묻지 않는다면, 어쩌면 당신은 아직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