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살다 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선택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게 되죠.
태도가 달라져요.
선택이 어긋나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어 가는 걸까?

제 딸에게서도 그런 시간을 겪었어요. 우리가 가르쳐 온 가치와는 전혀 닮지 않은 모습이 보이던 계절이었죠. 그럴 때 반응하고, 지적하고, 규칙을 조이면서 뭐라도 통하길 바라게 되는 건 참 쉬운 일이에요.

그런데 주님이 제 눈을 이 말씀으로 이끄셨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고린도후서 5:16 (개역한글)

여기서 “알다”로 옮겨진 헬라어는 (오이다) οἶδα — “알아보다, 깨닫다”예요. 개역한글은 이 말을 “알지 아니하노라”로 옮겼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네 아이를 규정하지 마라. 내가 보는 대로 보아라.

바로 다음 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어 가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개역한글)

그래서 저는 행동을 짚어 내는 대신, 정체성을 불러 주기 시작했어요.

“이건 네가 아니야.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야.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따로 구별하신 사람이야.”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어요.
현실을 못 본 척한 것도 아니었고요.
예수님이 이미 그 아이 위에 선포하신 진리를 다시 일러 준 것뿐이었어요.

처음엔 마른 땅에 씨를 뿌리는 기분이었어요.
당장 달라지는 것도 없고,
극적인 순간도 없었죠.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요.

조금씩, 아이가 어려움을 지나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보게 됐어요.
선택이 여물어 갔어요.
표정과 자신감이 달라졌어요.
새로운 계절 앞에서도, 힘든 날의 기분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붙들고 서더라고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아이는 훈계만으로 자라지 않아요.
아이는 정체성으로 자라요.

행동은 잠깐을 바꿔요.
정체성은 인생을 바꿔요.

아이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도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향해 말해 주면, 아이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일어서게 돼요. 압박이 아니라 진리로요.

오늘 어떤 모습이 되려고 애쓰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누구인지를 말해 줄 때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빚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