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의 딸이 죽어 가고 있었어요.
일 초가 아까운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 집으로 가시던 길에,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어요.
한 여인이 옷자락에 손을 댔고, 예수님은 돌아서서 그 여인을 찾으시고, 말을 건네시고, “딸아”라고 부르셨어요.

우리 같으면 앞만 보고 달려갔을 거예요.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다른 속도로 걸으셨기 때문이에요. 아버지의 속도로요.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져요.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누가복음 8:49-50 (개역한글)

예수님은 늦으신 게 아니에요.
한눈을 파신 것도 아니에요.
비효율적으로 움직이신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은 (카이로스) καιρός — “하나님이 정하신 때” 안에서 움직이고 계셨어요. 개역한글은 이 말을 대개 “때”로 옮겨요.

그래서 한 기적을 향해 가시면서 또 다른 기적 앞에 멈춰 서실 수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라면 발을 동동 구를 순간에도 잔잔하실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체되는 시간이 그분을 조급하게 만들지 못했어요.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는 걸 아셨어요(전도서 3:11).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도, 그 때를 믿어 보라고 손을 내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