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에 시선을 빼앗기면 정작 구주를 놓치기 쉬워요.

여리고의 거리는 아수라장이었어요. 웅성거림과 발소리, 뒤섞인 소음이 가득했지요. 다들 밀고 밀치며 그 유명한 선생을 한 번이라도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유명한 사람을 구경하는 것과, 나를 건져 줄 생명줄을 붙드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달라요.

삭개오는 키가 작았어요. 사람들 어깨 너머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그런데 그의 간절함이 다른 종류의 집중을 만들어 냈어요. 그는 그저 궁금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었어요.

이 장면은 광야에서 백성이 뱀에게 물리던 때를 떠올리게 해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높이 달라고 하셨지요.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수기 21:9 (개역한글)

자기 상처만 들여다본 사람은 죽었어요. 뱀을 분석한 사람도 죽었어요. 아픔을 두고 원망한 사람도 죽었어요.

오직 자기에게서 눈을 떼고 치료책을 쳐다본 사람만 살았어요.

삭개오는 그 시야를 얻으려고 나무에 올라갔어요. 소음에서 자기를 떼어 내어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았지요. 그리고 예수님을 찾던 그는, 예수님이 이미 자기를 찾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개역한글)

오늘 당신 주위가 얼마나 시끄러운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좋아요가 몇 개인지, 싫은 소리가 얼마나 들리는지도 중요하지 않아요. 군중은 그저 한눈팔게 만드는 것일 뿐이에요.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해요.

상처가 아니라 치료책을 바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