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 이야기에는 우리가 자주 그냥 넘어가는 이상한 대목이 하나 있어요.

예수님은 친구가 죽어 간다는 소식을 들으세요.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이에요. 우리 같으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달려가시리라 기대하죠. 사랑이 급하면 발걸음이 빨라지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를 말해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한복음 11:5-6 (개역한글)

천천히 다시 읽어 보세요.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머무셨어요.

관심이 없어서 머무신 게 아니에요. 병 고침보다 더 큰 일을 하실 만큼 마음을 쏟으셨기에 머무신 거예요. 부활의 무대를 준비하고 계셨던 거죠.

우리는 침묵을 거절로 오해할 때가 많아요. 하나님이 당장 응답하지 않으시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거두셨나 싶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늦게 가신 것은 마음에 “더 큰 영광”을 품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일찍 도착하셨다면 나사로는 병에서 나았을 거예요. 좋은 기적이죠. 그런데 “늦게” 도착하셨기에 나사로는 죽음에서 일어났어요. 영광스러운 계시가 된 거예요.

엄청난 계시가 가능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셔서 작은 해결로 끝내지 않으세요. 기다림은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가 아니에요.

기다림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자리를 마련하는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