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마다,
예수님은 고쳐 주셨어요.

몇 사람만이 아니에요.
드문드문도 아니에요.
“자격이 있어 보이는 사람”만도 아니에요.

다 고쳐 주셨어요.

마태는 이렇게 적어요.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태복음 12:15 (개역한글)

마가도 같은 장면을 보여 줘요.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마가복음 1:34 (개역한글)

누가도 다르지 않아요.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누가복음 5:17 (개역한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두고 따졌을 때도,
예수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셨어요.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누가복음 13:16 (개역한글)

예수님은 “오늘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한번 여쭤 보겠다” 하지 않으셨어요.

“이 여자는 풀려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어요.

고치시는 일은 어쩌다 한 번 내리는 결정이 아니었어요.
그분의 본능이었어요.
그분의 성품이었어요.
그분의 마음이었어요.

예수님께 나아온 병든 사람 중에 돌아선 이는 한 사람도 없어요.
단 한 사람도요.

치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다면,
예수님을 보세요 —
그분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 움직이는 모습이에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한복음 14:9 (개역한글)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치유를 아끼시는 장면은 없어요.
그리고 십자가는 그 치유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시려고 그분이 치르신 값을 보여 줘요.

치유는 하나님이 주기를 망설이시는 것이 아니에요 —
그분의 마음이 간절히 안겨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