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중간에 설 사람을 구했어요.

하나님이 산 위로 내려오셨어요. 백성은 산 아래 서 있었고요. 그런데 가까이 나아가는 대신, 모세를 앞으로 떠밀었어요.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애굽기 20:19 (개역한글)

그 본능은 지금도 우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육신은 여전히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관계를 대신 맡아 주기를 바라요. "목사님이 하나님과 가까우시잖아요. 목사님이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듣고 오셔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겸손하게 들려요. 그런데 아니에요. 그건 도둑맞는 일이고, 도둑맞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모든 것을 바꿔 놓은 사건이 있어요.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을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어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마태복음 27:51 (개역한글)

하나님과 보통 사람 사이를 가로막던 그 막은 저절로 해진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찢으셨어요. 그리고 바울은 그렇게 열린 것이 무엇인지 말해 줘요.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8 (개역한글)

여기서 "나아감"으로 옮겨진 말은 (프로사고게) προσαγωγή — "접근, 소개받아 들어감, 나아갈 수 있는 권리"예요. 왕 앞에 들어설 수 있는 특권을 가리키던 말이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특권이 이제 믿는 사람 모두의 것이 되었어요. 성직자라는 계층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요.

구별해 둘 것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사역과 기능과 부르심에서 다 같지 않아요. 목사는 당신과 다른 임무를 맡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선 신분에서는 우리 모두가 동등해요. "저분은 나보다 하나님과 가깝다" 같은 건 없어요. 당신이 부엌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당신이 아는 가장 존경받는 목사의 기도만큼이나 온전히 들으세요.

그러니 직접 기도하세요. 직접 말씀을 펴세요. 직접 구하는 것을 아뢰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개역한글)

이 초대는 "우리"라고 말해요. "안수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자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에요. 우리예요.

목사는 당신을 가르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알아 줄 수는 없어요. 그 부분만큼은 애초에 남에게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휘장이 찢어진 건, 하나님께 이르는 길 앞에 당신이 더는 누구를 앞세워 줄 서지 않게 하시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