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와 반응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있어요.

누가복음 18장, 한 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나아와요. 도덕적이고, 반듯하고, 그런데 불안해요. 그가 이렇게 묻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을 주세요. 계명을 가리키시죠. 청년은 그것을 다 지켰다고 말해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던 그 한 가지를 건드리세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누가복음 18:22 (개역한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어요. 율법이 그의 돈을 요구하자 마음이 닫혀 버렸어요. 그는 할 수 없었어요.

한 장만 넘겨 누가복음 19장으로 가 볼까요.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세요. 부패했고, 부유한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그에게 십계명을 내미셨나요? 아니에요. 가진 것을 다 팔라고 하셨나요? 아니에요. 예수님은 그저 오늘 네 집에 머물겠다고, 먼저 찾아가겠다고 하셨어요. 아무 요구 없이 우정과 함께함만 건네신 거예요.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개역한글)

율법이 요구하자 도덕적인 사람이 등을 돌렸어요. 은혜가 받아 주자 부패한 사람이 손을 열었어요.

삭개오는 구원을 돈으로 사려던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에 그만 압도되어서, 저도 모르게 손이 펴진 거예요.

우리는 받아들여지려고 드리는 게 아니에요. 이미 만나 주셨기에 드리는 거예요.

베풂은 사랑받은 줄 아는 마음에서 저절로 나오는 반사작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