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어요.
그 이름의 뜻은 이래요.

(베이트 헤세드) בֵּית־חֶסֶד — “은혜의 집”

그런데 그 못가의 풍경은 은혜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요.
병든 사람, 눈먼 사람, 몸이 마비된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아마 자기에게는 끝내 오지 않을 그 한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한복음 5:4 (개역한글)

은혜는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그렇게 일하는 건 율법이에요.

율법은 힘을 요구해요.
은혜는 힘을 공급해요.
율법은 “먼저 들어간 자가 낫는다”고 말해요.
은혜는 “맨 마지막 사람도 귀하다”고 말해요.

예수님이 고쳐 주신 그 사람은 서른여덟 해를 앓았어요.
그는 빠르지 않았어요.
그는 강하지 않았어요.
그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먼저 그에게 다가가셨어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한복음 5:8 (개역한글)

그를 일으킨 건 물이 아니었어요.
그의 빠른 발도 아니었어요.
그의 안간힘도 아니었어요.

그의 곁에 서 계신 은혜, 바로 그 임재였어요.

베데스다는 강한 사람이 이기는 자리가 아니었어요.
움직일 수 없는 한 사람을 은혜가 찾아낸 자리가 되었어요.

오늘도 예수님은 그렇게 일하세요.
그분은 당신이 그분께 닿기를 기다리지 않으세요.
그분이 당신에게 닿아 오세요.

은혜는 언제나 더 이상 내어놓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로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