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해요. 기술도, 소통 방식도, 문화도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달라져요. 안타깝게도 교회는 이런 변화 앞에서 자주 두려움으로 반응해요. 새로운 도구에 "악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익숙한 전통 속으로 물러나 버리죠. 그런데 그렇게 물러설수록 교회는 세상에서 고립되고, 복음을 전할 통로는 좁아져요. 우리는 메시지를 타협하지 않으면서 방법을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반석에 닻을 내린 채로, 시대에 맞추어 움직여야 해요.

복음의 메시지는 결코 변하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은 영원한 진리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개역한글)

우리의 터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요. 소통에 쓰는 도구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에요.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소셜 미디어도, 오늘의 음악도 결국은 전달의 통로일 뿐이에요. 교회가 그 자리를 비우고 나가면, 그 자리는 고스란히 세상의 몫이 돼요.

바울은 적응의 필요를 알고 있었어요. 그는 듣는 사람에 따라 접근 방식을 바꾸었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았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린도전서 9:22 (개역한글)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을 때, 그들이 만든 것은 원수의 도구가 아니었어요. 복음을 온 땅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도구였어요. 다윗이 현악기를 연주했을 때, 그는 자기 시대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어 하나님께 예배드렸어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마음이 필요해요.

우리가 지금의 문화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킬 때, 우리는 영향력을 잃어요. 마귀는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루해 보이기를 바라요. 믿음은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바라요. 그러나 창의성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세요. 기발한 발명도, 번뜩이는 착상도 그분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현대의 매체를 거부하면, 그 땅은 원수에게 넘어가요. 우리는 그 땅을 되찾아야 해요. 탁월한 콘텐츠를 만들고, 오늘의 기술을 쓰고, 이 세대의 언어로 말해야 해요. 십자가를 타협하자는 말이 아니에요. 십자가가 오늘의 세상에 보이게 하자는 말이에요.

두려움 때문에 낡은 방법에 묶여 있지 마세요. 두 발은 성경의 진리 위에 단단히 딛고, 두 손으로는 세상에 닿을 새로운 길을 지어 보세요.

메시지의 닻은 결코 바꾸지 말고, 방법의 돛은 끊임없이 바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