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을 잃은 구절은 구실이 돼요

1535년, 마일즈 커버데일이 영어로 된 첫 완역 성경을 인쇄했어요. 그는 서문에서 독자에게 읽기의 원칙 하나를 남겼어요. "성경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은, 무엇이 말해지고 쓰였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말로, 어느 때에, 어디서, 무슨 뜻으로, 어떤 정황에서 말했는지를 살피고, 앞에 무엇이 오고 뒤에 무엇이 따라오는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문장은 길어요. 요점은 짧고요. 한 구절은 한 단락에 속해 있어요. 그 단락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와 역사의 한 순간에 속해 있고요.
구절을 그 자리에서 뽑아내면 거의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들 수 있어요. 문맥을 잃은 구절은 구실이 돼요. 내가 순종해야 할 본문이기를 그치고, 내가 이미 하고 싶었던 말을 받쳐 주는 받침대가 되어 버려요.
이 방법을 가장 먼저 쓴 것은 마귀예요. 광야에서 마귀는 예수님께 시편 91편을 인용했어요.
인용은 정확했어요. 쓰임이 틀렸을 뿐이에요. 시편 91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를 노래해요. 그 사람더러 지붕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말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마귀가 빼놓은 것을 채워 주는 또 하나의 말씀으로 대답하셨어요.
이제 커버데일의 질문들을 사람들이 즐겨 따로 떼어 인용하는 한 대목에 적용해 볼까요. 마태복음 25장은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로 시작해요. 첫마디가 "그 때에"예요. 뒤가 아니라 앞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 앞에 마태복음 24장이 있고, 거기서 예수님은 감람산에 앉으셔서 난리와 지진과 거짓 그리스도와 멸망의 가증한 것을 말씀하세요. 그리고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세요. 이 한마디가 듣는 이가 누구인지를 못 박아 줘요. 중국이나 인도의 성도에게 안식일에 도망할 일을 걱정하라고 경고하지는 않으니까요. 25장의 비유가 무엇을 가르치든, 그것은 24장과 같은 청중에게 같은 주제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 때에"를 잘라내 버리면, 그 비유는 아무나 겁주는 데 쓸 수 있게 돼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일러 주었어요.
여기 "옳게 분변하여"로 옮겨진 말은 (오르토토문타) ὀρθοτομοῦντα — "곧게 자르다"예요. 재료를 아무렇게나 쪼개는 사람이 아니라, 곧은 선을 따라 정확히 잘라 내는 일꾼의 그림이에요.
그러니 한 구절 위에 교리를 세우기 전에, 그 앞 장을 읽고 그 뒤 장을 읽으세요. 누가 말하고 누가 듣고 있는지 물으세요. 언제인지, 왜인지 물으세요. 그 답이 그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면, 문제는 성경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에요.
문맥 안에서 읽은 구절은 나를 고쳐 줄 수 있어요. 문맥에서 뽑아낸 구절은 나에게 맞장구만 쳐 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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