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아주 오래전에 태어난 두 아들로 나타나 있어요.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가정 이야기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고 말해요. 거기에는 상징이 담겨 있어요. 이것은 비유예요. (알레고레오) ἀλληγορέω — “비유로 말하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라디아서 4:22 (개역한글)

먼저 이스마엘이 있어요.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아들이에요. 이 아들은 육체를 나타내요.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꼭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도덕하게 산다는 뜻이 아니에요. 육체는 사람의 노력을 가리켜요. 하나님이 너무 더디 움직이신다고 여겨서 우리가 하나님을 거들어 드리려 할 때 벌어지는 일이에요. 하나님의 결과를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내려는 시도예요.

그다음 이삭이 있어요. 자유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아들이에요. 이 아들은 약속을 나타내요. 이삭은 사람의 노력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자리에서 태어났어요. 그 부모의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 뒤에야 찾아왔어요. 애쓴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태어난 아들이에요.

이스마엘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삭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에요.

하나는 불안과 계획에서 태어나고, 다른 하나는 안식과 받아들임에서 태어나요. 오늘 당신의 걸음을 어느 아들이 결정할지, 그 선택은 당신에게 맡겨져 있어요.

이스마엘을 낳으려고 안간힘 쓰는 일을 멈추고, 당신의 이삭을 데려오실 하나님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