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지친 나그네가 우물가에 서 있어요. 그 뒤로는 낙타 열 마리가 무릎을 꿇고 쉬고 있고요. 그가 한 젊은 여인에게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청해요.

대부분은 물동이를 기울여 마시게 해 주고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 정도면 예의 바른 거예요. 그걸로 충분하고요.

아브라함의 종은 그 우물가에서 누구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먼저 하나님께 표징을 구했어요. 표징도 신중하게 골랐어요. 어떤 색 옷을 입은 여인이나 몇 시쯤 우물에 나오는 낯선 사람을 구하지 않았어요. 그가 구한 건 부탁받은 것보다 더 해 주는 여인이었어요.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세기 24:14 (개역한글)

여기서 “은혜”로 옮겨진 말은 (헤세드) חֶסֶד — “인자, 언약의 사랑”이에요. 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헤세드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했고, 같은 마음을 품은 여인을 찾았어요.

개역한글이 ‘약대’라고 부르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온 뒤라면 한 마리가 몇 분 만에 물을 75리터 넘게 들이켤 수 있어요. 열 마리면 엄청난 양이에요. 흙으로 빚은 물동이를 들고 우물로 내려갔다가 구유까지 다시 올라오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도 리브가는 먼저 나섰어요.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창세기 24:19-20 (개역한글)

창세기는 그녀가 달려갔다고 기록해요. 낙타에게 물을 먹여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리브가는 필요를 보았고, 누가 두 번째 부탁을 꺼내기도 전에 그 필요를 채웠어요.

종은 그녀의 힘을 시험한 게 아니었어요. 그는 그녀의 마음을 보고 있었어요. 그의 부탁은 최소한이었고, 그녀의 대답은 그 이상이었어요.

아직 혼자라면 그 ‘이상’을 눈여겨보세요. 그 사람이 식당 종업원을, 지친 부모를, 자기에게 결코 갚을 수 없는 동료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세요. 연애할 때 딱 최소한만 하는 사람은 결혼해서도 딱 최소한만 해요. 결혼 생활에는 한 사람이 자기가 데려오지도 않은 낙타를 위해 물을 길어야 하는 저녁이 수없이 찾아오거든요.

이미 결혼했다면 질문은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해요. 나는 배우자가 부탁한 만큼만 해 주고 있나요? 아니면 다시 우물로 내려가나요?

물 한 모금은 누구나 건네요. 당신의 낙타에게까지 물을 길어 주는 사람을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