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는 이런 제사가 하나 있어요.
(아샴) אָשָׁם — “속건제”예요.

이 제사는 용서만 다루지 않았어요.
반드시 배상이 따랐어요. 본래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갚아야 했어요 (레위기 6:5).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더 큰 것을 미리 보여 주시려는 그림자였거든요.
예수님은 당신의 죄책을 지고 가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어요.
그분이 당신의 아샴, 곧 속건제물이 되셨어요.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어요.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이사야 53:10 (개역한글)

그분이 죄인의 자리에 서셨기 때문에,
이제 그분은 회복시키시는 분이 되세요.

넘어지기 전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리를 넘어 120퍼센트로 말이에요.

은혜는 당신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아요.
은혜는 당신을 더 나은 자리로 돌려놓아요.

속건제를 아는 신자를 건드린 원수는 늘 후회하게 돼요.
넘어짐마다 120퍼센트 회복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 버리니까요.

하나님은 잃은 것을 되찾아 주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당신이 가져 본 적 없는 것까지 더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