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면 욕심인가요

한 아이가 마른 낙엽을 갈퀴로 긁어모아 커다란 광주리에 담아요. 낙엽은 가벼워서 금세 수북이 쌓이고, 광주리는 벌써 다 찬 것처럼 보여요. 그러자 아이가 그 안에 들어가 발로 꾹꾹 밟아요. 낙엽이 내려앉고, 다시 자리가 생겨요. 또 긁어모으고, 또 채우고, 또 밟아요. 그다음엔 광주리를 흔들어 쌓인 더미를 가라앉히고 다시 더 담아요. 마침내 낙엽 한 장도 더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쌓인 더미가 테두리 위로 흘러넘쳐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둠이 바로 이런 모습이에요.
예수님은 그냥 "주라"고만 하지 않으셨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하셨어요. 주는 행위에 돌아올 것에 대한 약속을 붙이셨고, 그 돌아옴이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그려 보이셨어요.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어떤 이들은 주면서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곧 탐심이라고 말해요. 그 말이 옳다면 예수님이 실수하신 셈이에요. 그렇다면 왜 거둠을 굳이 묘사하셨을까요? 듣는 이들이 못 본 척하기를 바라셨다면, 왜 넘치도록 담기는 그림까지 그려 주셨을까요? 주님은 비판하는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세요. 주님은 당신이 그 결과를 바라보기를 원하세요. 반드시 거둘 것이 있음을 알기를 원하세요.
욕심과 믿음은 달라요. 욕심은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으신 것을 움켜쥐려 해요.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대해요. 주면서 후히 되어 돌아올 것을 바란다고 해서, 당신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인 건 아니에요. 그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붙드는 거예요.
하나님은 스스로를 상 주시는 분이라고 하세요. 그분의 상을 기대하는 건 인격의 결함이 아니에요. 그것이 바로 믿음의 정의예요. 오히려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뜨리시는 방법은, 거둠에 대해 입을 다무시는 게 아니에요. 그분의 방식으로 주는 법을 가르치셔서, 움켜쥐던 자리에 너그러움이 들어서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주세요. 그리고 줄 때, 예수님이 친히 당신 안에 심어 두신 그 기대를 두고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 광주리를 떠올려 보세요. 눌러 담고. 흔들어 담고. 넘치도록.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대하는 건 탐심이 아니에요. 그분을 믿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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