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에는 눈여겨볼 그림이 하나 있어요.
문둥병자가 정하다는 선언을 받기 전에는, 새 한 마리를 놓아 줄 수 없었어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미리 비춰 주는 그림자예요.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에는
사망에서 놓여나실 수 없었어요.

바울은 이렇게 썼어요.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개역한글)

여기서 개역한글이 “위하여”로 옮긴 말은 (디아) διά — “…때문에, …로 말미암아”예요.
당신의 의롭다 하심을 바라보며 살아나신 게 아니에요.
당신의 의롭다 하심을 기대하며 살아나신 것도 아니에요.
이미 내려진 당신의 의롭다 하심 때문에 살아나셨어요.

당신을 향한 판결은 돌이 옮겨지기 전에 이미 바뀌어 있었어요.
부활은 하나님이 벌써 선고하신 것을 드러내 보인 사건이에요.

예수님이 살아나신 건, 하나님이 당신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신 결과가 아니에요.

당신이 정하다 선언되었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걸어 나오셨어요.

은혜는 당신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