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마음은 전염돼요.

성경은 "쓴 뿌리"가 돋아나지 않도록 잘 살피라고 경고해요. 그 뿌리가 나면 분노를 품은 그 사람만 상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은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말해요.

쓴 마음을 품은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얼굴을 맞대고든 화면 너머로든, 그 사람이 타 놓은 물을 함께 마시는 거예요. 그 독을 그대로 들이켜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속이 베인 것처럼 아프고, 그 사람이 느끼던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돼요.

그런데 이 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단지 누가 나에게 잘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바로 앞 구절이 진단을 내려 줘요.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히브리서 12:15 (개역한글)

여기서 "돌아보아"로 옮겨진 헬라어는 이것이에요: (Episkopeo) ἐπισκοπέω — "감독하다, 두루 살피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며 돌보라고 부름받았어요. 그럼 무엇을 살피는 걸까요? 아무도 은혜에 이르지 못한 채 뒤처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성적인 죄나 도덕적 실패나 분노의 폭발이 터지기 훨씬 전에, 먼저 은혜가 바닥나요.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하기를 그만두고 자기 성과에 기대기 시작하면 사람은 지쳐요. 냉소적이 돼요. 그리고 마음이 써요.

쓴 마음의 해독제는 용서만이 아니에요. 은혜를 다시 새롭게 보는 것이에요.

은혜로 가득하면서 동시에 쓴 마음으로 가득할 수는 없어요.